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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고, 사랑한다
스탠드에서 본 풍경 | 2008.09.22 01:47




 내가 알고 지내는 열네 살에서 열여덟 살의 아이들을 두고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면,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룰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도 없을 테지만, 아이들을 사로잡은 스포츠는 누가 뭐라고 해도 축구다. 공과 터만 있으면, 비가 오든 햇볕이 내리 쬐든, 언제든지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축구만의 친화력 탓일 수도 있고, 아이들만이 가진, 몸을 움직이려는 열기, 그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아이들은 이렇게 축구를 좋아하고, 웬만한 유명한 축구선수 이름을 줄줄 꿰고, 축구와 관련된 게임 이야기를 하고, 아이스크림 따위를 내기로 걸고, 개중에는 공놀이 자체를 즐기는 아이들도 더러 있다. 그런데 요즘 이런 아이들은 축구에 대해서 불만이 많다. 범위를 줄이자면, 국가대표 축구에 불만이 많다.


정확히 무어라 딱히 집어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열네 살 소년의 입에서 “요즘 축구 누가 봐요?”라던가, “에이- 축구 망했잖아요”와 같은 거침없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 그들의 불만은 아마도 승리하지 못하는 축구 - 야구처럼 금메달을 따오지 못한 축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다.


이야기를 좀 더 끌고 가서, 그러면 왜 이기지 못했을까? 라는 질문에는 제법 정색들을 하고 답한다. 조금 걸러서 들어주셔도 좋지만, 대뜸 “못해서 진거죠” 혹은 “감독을 바꿔야 해요”라는 대답과 마주치고 나면,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의 분위기나 축구 관련 기사들의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축구장에 물 채워라”와 같은 원색적인 비난을 분명 아이들도 들었을 것이다. 패배는 나쁜 것이고, 승리는 선한 것이라는 절대 공식 앞에서, 패배하는 국가대표팀은 아이들에게 동경을 품게 만들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앞에 두고 책임 있는 비난이니, 대안 있는 비판이니 하는 원칙론을 늘어놓는 것은 또 얼마나 지루하고 세상모르는 순진한 소리일까 싶어, 웃고 넘기면서도 머쓱해지곤 한다.


그럼에도, 질문은 또 생긴다. 국가대표팀은 축구를 못해서 진 것이고, 감독을 바꾸면 축구를 잘 하게 되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서 다시, 감독은 축구의 어떤 부분이며, 또 한발 나가서, 감독은 축구의 무엇을 바꿔줄 수 있을까, 라는 질문 말이다. 물론 나는 전문가도 아니고, 그저 좋아하는 팀과 감독을 가진 축구팬이기 때문에, 정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누군가 내게, 축구팀의 감독은 이런 존재라고 말해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을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책임”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책임”을 가지고 있는 감독에게 나는 모종의 안쓰러움과 질투심을 가지고 있다. 안쓰러움이란 말 그대로 책임의 무게에 대한 것이며, 질투심이란 대체로, 내가 사랑하는 팀의 모든 결정에 가장 긴밀하고도 압도적으로 관여하는 사람에 대한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모든 경기를 이기고 싶어 하는, 혹은 모든 경기를 이기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팬과, 모든 경기를 이길 수는 없고, 사실은 이길 수 있는 경기가 몇 경기 안 될지도 모르는 감독 사이의 끊이지 않는 애증의 연결 고리 말이다.


최근에 전북 현대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최강희 전북 감독의 글은 여러모로, 팬과 감독 사이의 이러한 애증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2005년 FA컵 우승, 2006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커리어를 가진 팀, 아시아의 별을 가슴에 달았던 전북은 시즌 초에 리그 우승을 목표에 두고 야심찬 선수 영입과 행보를 보여주었지만, 시즌 중반을 넘어선 지금 리그 9위. 팬들 입장에서는 기대치에 못 미치는 성적임에는 분명하다.

더 많은 승점을 원하는 팬들은 어째서 더 자주 승리하지 못하냐고 팀을 응원하고 때로는 다그친다. 감독은 나름의 비전을 가지고 계획들을 실행에 옮기려 하지만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산적해있다. 이 와중에 골이 생긴다. 결과는 중요하다. 축구는 승점을 기록하지만, 패배 이후의 시간을 기록하지 않는다. 축구는 골을 기록하지만, 실점하는 순간의 고통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러나 팬들은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축구에서 가장 예민한 고통의 메트로놈은 팬이다.


어째서 자신이 사랑하는 팀에만 이러한 고통이 반복되는 것인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반대편 골대 쪽에 있는 시시하고 돈만 많고 그다지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하고 운은 억세게 좋은 팀이 승점 3점을 송두리째 가져가 버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사람의 마음이란 이것이 누구에 의해서 비롯되었는지 이유를 찾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쉬운 표적이 되며, 실제로 그러한 결과를 가져온 장본인일지도 모르는,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서 직접 뛰지 않으나,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 한다고 알려진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패배에 개의치 않아도 “역시 곧 팀을 떠날 사람”으로 폄하당하고, 패배를 가슴 아파 해도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역시 패배는 나쁜 것이다.


물론 팬이 감독을 비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수히 많다. 실제로도 많지만, 없다고 해도 수백 가지도 더 만들어낼 수 있다.(심지어 나는 감독이 벤치에 앉을 때의 옷차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람도 본 적이 있다.) 팬들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실점이라든지, 왜 이렇게 열심히 하지 않는가, 라며 질책할 수도 있고, 도대체 이기기 위한 전술이 무엇인가, 라고 되물을 수 있다. 어째서 그 순간에 팀의 에이스가 교체 되어야 했는지, 혹은 어째서 팀을 승리하게 할 선수는 출장하지 못했는지, 왜 팀을 위해 헌신했던 선수들을 트레이드 시키는지, 하는 질문들 말이다.

경기에 뛰었던 선수들은 ‘우리’가 되지만, 경기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나 큰 그림을 제시한 감독은 “왜 그것 밖에 하지 못하느냐” 라고 닦달을 당한 뒤, 감독에 대한 비판의 마지막은 대체로 이렇게 장식된다. 도대체 당신은 ‘나처럼’ ‘팀을 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한’ 팬들과 같은 마음으로 일하고 있느냐, 라며 일종의 사상검증(?)을 요구 하는 것이다.


이건 마치, 동화로도 면면을 이어져 내려오는 계모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처럼 견고한 메커니즘이다.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실제로 팀과의 물리적 거리가 존재하는 팬과, 팀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고는 있으나 그 사랑을 승점 3점으로 증명해내지 못했을 때의 감독은,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이가 될 수도 있으나, 때로는 서로를 적대시하게 될 수도 있다. 심심찮게 팬들의 크고 작은 협박에 시달리는 해외 클럽들의 감독들이 그 예다. 팀에 대한 사랑은 어찌 보면 이렇게 서로에게 가학적이다.


감독의 입장에서는 서운하고 속상할 것이다. 같은 배를 탔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얼굴을 바꾸고, 팀을 떠나라- 라고 요구한다면, 어느 누가 그를 내 편이며 동료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동료다. 사실 팀의 속사정이란 패배 앞에서는 변명이 되고, 승리하면 모든 역경을 이겨 낸 귀한 승리의 배경이 된다. 아마도, 이탈리아의 리피 감독은 이런 말 못할 심정을 어쩌지 못해, 그라운드 한편에서 시가를 그렇게 피워댔던 것이 아닌가 짐작해본다. 이런 마음 때문에, 프랑스의 도메네크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승리와 패배를 사람의 영역이 아닌, 별에게 물어보는 점성술 예찬가로 알려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온 인생을 축구에 바치고 있는 감독들은 아마도 골대 뒤의 사람들, 가끔은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고, 경기장의 쓰레기통을 걷어차기도 하고, 힘을 다해 야유를 보내기도 하지만, 사실은 순진하리만치 승리를 좋아하고, 눈물과 분노와 열정이 많은 그들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을 두려워하고 좋아하고, 때로는 무서워하는 마음으로 “패배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 거나, “팬들에게 죄송하다” 거나 하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연봉, 그 이상의 도의적인 책임감을 팬들에게 품고 있는 것이리라 나는, 믿고 있다.


축구는 팬의 마음과 비슷하다. 뜨겁고도 차갑다. 오늘은 당신을 향해 손가락질 하지만, 내일은 온 힘을 다해 당신을 껴안아 줄 수 있다. 마치, 아이들이 축구 망했잖아요― 라고 말들은 그렇게 하면서도, 경기 결과에 흥분하고, 다시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신나게 공놀이를 즐기는 것과 같다. 우리, 팬의 존재란 이렇게 나약하고 통제 불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하고, 존경한다. 이 부분에서 감독과 팬에게 타협과 배려가 필요하다. 우리도 알고 있다. 축구팀의 감독이 전자제품의 부속품처럼 바꾼다고 성능이 업그레이드 되는 기계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 팬들 역시 막무가내로 이기지 못했다고 감독에게 부당한 분노를 표현하는 미성숙한 존재만은 아니라는 것을, 팀에 대한 태생적인 열정을 가진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을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너무 큰 것일까.


이 글을 쓰기 전에, 욕을 제일 많이 먹은 감독 best 5나 가장 불운한 시즌을 보낸 감독 best 5 정도를 꼽아보는 글은 재밌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어쩐지- 축구장의 근처에만 맴도는 사람이 평생을 축구와 함께 해온 축구인을 웃음거리로 삼는 것 같아, 조심스러워져 그만두었다. (내가 생각하는 욕을 제일 많이 먹은 감독과 가장 불운했던 감독의 1위는 모두 한 명의 감독이었던 것도 그 소재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다.)

그러다 ‘피버 피치’의 작가, 닉 혼비의 소설에 등장하는 “유명한 사람들이 많은 돈을 버는 이유는,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별 이유도 없이 욕을 먹어야 하는 것 때문이다”라고 했던 글귀가 떠올라 혼자 웃었다. 전북의 최강희 감독이 자신을 향해 “욕먹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한 구절이 겹쳐져서이다. 다행히 전북이 컵 대회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전북 팬에게 좋은 선물을 했다. 이 좋은 소식이 우리의 모든 ‘위기의 감독’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자기 팀의 감독들을 향해 원망을 퍼붓고 있는 가엾은 우리네 팬들에게도 좋은 선례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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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힘이 없다
스탠드에서 본 풍경 | 2008.09.22 01:44
[스탠드에서 본 풍경] 추억은 힘이 없다
부산의 옛 유니폼을 입고 구덕운동장에서 경기를 펼친 부산 아이파크 ⓒ부산 아이파크
 
K-리그 9라운드, 부산과 대전의 경기를 보기 위해 구덕 경기장을 다녀왔습니다. 아주 멀다고 생각했던 곳은 고속버스로 4시간 반, 휴게소에서 따뜻한 차 한 잔 마실 겨를도 없이 달려야했지만, 이상하게도 여행이라는 느낌보다는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맑은 날이었지만 바람이 불었습니다. 확실히 바람이 달라요. 서울에서 부는 바람과 소금기를 머금은 부산의 바람은. 방향이 바뀌는 듯 했다가, 소용돌이치는가 하면, 아기얼굴처럼 고요해지기를 반복하는 바람 안에는,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팀이 있는 땅, 그 땅에 대한 향수(鄕愁)가 있습니다.


티켓은 티켓 구매 대행 사이트를 통해 예매했습니다. 티켓 가격은 십년 전, 부산이 아이파크 이전에 로얄즈였던 시절, 붉은 색이기 전에 푸른색이었던 시절 그대로였습니다. 티켓 가격뿐이던가요. 경기장은 6만 관중석의 아시아드 주경기장이 아닌, 구덕 종합 경기장. 선수들의 유니폼은 푸른 색. 귀환한 안정환 선수의 사진이 월드컵 스타 황선홍 감독의 사진과 나란히 프린트되어 벽에 붙어있습니다. 꼬박 십년 전 ‘그 곳’, 대우 로얄즈가 있던 그 시간을 매우 유사하게 구현해놓은 그 곳은, 마치, 영화를 촬영하는 세트장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장르는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드라마도 아닌, SF라고 해두는 것이 좋겠어요. 과거를 복기해서 그것에서 의미와 현실을 찾는 것인 다큐이고, 픽션이긴 하지만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인 드라마라면, 이것은 "현실에 없는 것"을 가지고 즐거움을 만들어내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의문이 생겼습니다. 푸른색의 부산과 붉은색의 부산은 같은 팀입니까?


비난을 한다거나, 비판을 한다거나,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부산이 대우 로얄즈 시절을 지나, 아이파크가 되었을 때부터 연고지 팀으로서 아껴왔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대우 로얄즈 시절의 영광에 관해서는 그저 몇 번의 구경꾼이 되어본 적 밖에 없습니다. 전문가도 아닐뿐더러, 축구의 언저리를 맴도는 팬에 불과 합니다. 아마도 할 수 있는 말은 대부분, 결론이나 근거를 가진 추론보다는 질문에 가까울 수밖에 없을 위치인 것이지요.


네, 경기는 모두들 아시다시피 1-2로 졌습니다. 패배는 늘 그렇듯, 무심코 밥을 먹다 혀를 깨물고 마는 통증 같은 것이에요. 반면에, 대전은 비통함에 잠겨있을 김호 감독님께 명예로운 200승을 안겼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기록의 현장에 있었던 것을 기뻐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묻고 싶었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동대신동 지하철역에서부터, 낯익은 말투와 경기장으로 향하는 익숙한 사람들의 표정 안에서, 우리는 리그 13위에 9라운드까지 단 1승을 거둔 팀이 아니라, 우승의 별을 4개나 달고 있던 사실상 부산 아이파크와는 모기업도 팀의 정신을 상징하는 컬러도, 경기장도 바뀌어버린, 대우 로얄즈의 과거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박지성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연고이전의 이력을 가진 서울 FC보다, 비록 K3리그 이지만 지지자들의 후원에서 출발한 서울 유나이티드를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선택의 문제가 주어졌을 때, 부산은 팀의 컬러를 바꾸고 경기장을 옮기고 새로운 사람들로 팀을 꾸리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선택의 책임, 과거의 K리그 명문을 이어가기보다 붉은 색으로 다시 태어난 이 팀의, 사실상 재창단의 과정을 겪었다고 볼 수 있는 이 팀의 미래에 대하여, "과거" 보다는 보다 나은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적어도 현실에 없는 팀 보다는,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할 "미래의 팀"을 보는 것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축구는 '이벤트'가 아니라, 역사가 요구되는 스포츠이기 때문입니다.


거리에는 플랜카드가 걸리고, 사람들은 억지로 전단지를 쥐게 되고, 휴일의 어느 날을 소비하기 위한 이벤트가 아닌, 내 일상의 무수한 약속들이나 의무들을 이기고, 내 휴일을 기꺼이 팀의 승리를 응원하는데 보탤 수 있는, 자발적인 헌신에서 비롯된 즐거움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즐겁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잘 가꾸어진 구덕의 잔디를 참 오랜만에 보았어요. 날은 맑았고, 지붕이 없는 경기장 특성상, 그늘진 곳이라고는 없는 맑은 봄날의 축구 경기장, 그 곳에 내 선수들이 있고, 그들이 뛰고 있었고, 새로 산 머플러에서는 희미한 추억의 냄새가 났어요. 그것만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축구팬으로 누릴 수 있는 행복의 많은 부분을 누렸습니다. 어찌보면, K리그에 팀을 가진 도시는 14개, 참으로 값진 호사를 누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보고 싶은 장면이 있습니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공사비가 투입 된 거대한 경기장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선수와 지지자의 거리가 가까운 경기장, 오로지 축구하는 사람과 축구 보는 사람이 배려된 경기장, 그 곳에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차 있는 사람들과 우리들. 과거의 어느 날을 굳이 환기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의 부산 아이파크와 호흡을 같이 해 나갈 수 있는 미래의 어느 경기장, 그 곳을 보고 싶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팀이 축구 명문으로서의 자존심을 되찾아오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주고 있다는 것을요.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는 팬의 입장에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 있어요. 우리의 추억은 과거의 것이지만 가슴 뿌듯했고, 때론 벅찼고, 기뻐서 울고 싶었던 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사리는 다시 누리지 못할 힘없는 추억, 그것보다는 우리의 미래, 팀의 미래를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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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 Shirt, Your Team
스탠드에서 본 풍경 | 2008.09.22 01:42
[스탠드에서 본 풍경] Your Shirt, Your Team
 
2007년 11월 K3리그의 초대 챔피언을 가리는 현장에 있었다. 잠실 주경기장 관중석 사이로, 손바닥만한 초겨울 햇볕이 내려앉는다. 클럽의 창단 첫 해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 검은색과 흰색의 줄무늬로 상징되는 서울 유나이티드 지지자들이 넘실댄다. 달콤한 탄산음료 냄새가 감돌 것 같은 가을의 잔디밭, 그리고 같은 색깔의 사람들이 있는 풍경은 어쩐지 코끝이 찡해진다.


그러나 곧, 그 틈새로 남다른 푸른색이 끼어든다. 하얀 우유에 코코아 분말이 떨어진 것 같았다고 할까. 이질적인 푸른색, 분명 K리그 팀의 유니폼이 틀림없다. 어째서 이곳에, K3리그이며, 서울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이며, 지지자들이 모여 서포팅을 하는 그 곳에 그 푸른색을 나타나게 된 것인지 경기 내내 의아해 한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명백하게 누구인지 알 것 같은 그 푸른색 유니폼의 정체는 충분히 의아함을 줄 수 있다.


축구팬은 그가 입은 티셔츠만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부산대우 로얄즈 시절의 티셔츠를 입고 있다면, 구덕운동장에서 한번쯤은 마주쳤을 지도 모른다. 그가 대전 시티즌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면, 정열적인 로맨티스트일지도 모른다. 혹은 포항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면 보스니아를 '라데의 나라'라고 기억할지도 모르며, FC 서울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면, 연고지 이전의 아픔이나 책임에 대해서 무감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한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축구팬에게 티셔츠는 그가 어떤 팀을 지지하는가의 절대적인 문제의 답을 알려주는가 하면, 그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알려주는 기초적인 단서가 될 수 도 있다. 티셔츠 한 장이 말이다.


길을 지나다보면 가장 자주 마주치게 되는 유니폼은 요즘은 단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박지성 효과인지, 원체 인기 많은 빅 클럽이기 때문인지 분간이 안가긴 하지만, 메인 스폰서의 로고 글씨가 너무 큰 탓에 내 취향은 아니다. 그 다음은 워낙 소수이기 때문에 지지 성향을 드러내는 것을 벗어나, 패션 아이템으로서 가치가 있는 겉옷까지 포함하자면, 아스널의 레인 자켓이나 레알 마드리드의 후드 자켓 같은 것들이 눈에 띈다. 눈치 챘겠지만, 유럽 빅 클럽들의 것이 대부분이다.


축구장을 제외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 학교나 직장을 갔을 때 말이다. 그럴 경우, 아스널의 레인 자켓에 루즈핏의 청바지를 입고 나갔다고 하자. 사람들은 대개 나를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쯤으로 여기고, 스포츠룩의 일부로 보이는 자켓에 대한 관심을 접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얀 티셔츠 위에 부산 아이파크의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자리에 나갔다고 하자. 이때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 된다.


특이한 티셔츠네요. 라든가, 선물 받으셨어요, 라든가. 이 티셔츠가 축구선수들이 입은 유니폼의 같은 재질의 것이고, 보통 우리가 티셔츠 한 장에 지불하는 돈보다 비싼 축에 든다는 것을 알게 되면, 게다가 이것이 K-리그 구단 중 하나의 유니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순간 아, 축구 좋아하시나봐요- 라는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들과 나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그어진다.


이 세계와 저 세계, 축구와 축구 바깥 세계 말이다.


티셔츠 한 장이 어째서 커밍아웃의 소재가 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겪어보면,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거나, 취향일 뿐인데 굉장한 오타쿠 취급에 불편해 지는 일도 있다. 어쨌든, 경기장을 찾을 때가 아니면 입지 않고 고이 옷걸이에 걸어두는 유니폼은, 그래도 축구팬이라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필수 아이템 목록 1호다.


선수의 등번호를 유니폼에 새기는 마킹은 또 어떤가. 선수의 백넘버는 선수가 가진 재능과 보여준 기량을 상징한다. 우리는 7번과 5번 혹은 18번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내 티셔츠에 새겨진 선수의 이름의 백넘버는 정신적인 커넥션을 상징한다. 아버지들이 딸이나 아들의 사진을 지갑에 끼우는 것과 같다고 할까. 그들의 선전은 나의 자부심이 되며, 다음에 경기장을 찾을 원동력이 된다. 마킹은 마치, 유니폼을 입는 행위에 대한 마지막 방점, 화룡점정과 같다.


그래서, 이 티셔츠는 선수의 운명을 바꿔놓기도 한다. '티셔츠 판매원'이라는 다소 오명에 가까운 단어의 탄생에서 엿볼 수 있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동팡저우와 같은 경우, 어린 나이에 퍼거슨 감독의 낙점을 받아 팀에 합류한 그를 두고 검증이 안 된 실력의 선수를, 중국 10억 인구를 상대로 마케팅 차원에서 데려왔다는 비난을 들었다.


축구 근처의 사람들에게는 꿈의 도착점인 유럽의 빅 리그, 그 중에서 잉글랜드의 EPL, 그 중에서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면, 그리고 그 유니폼에 동팡저우의 마킹이 되어있다면, 중국인들에게 그 상품가치가 한층 상승할 것임은 불 보듯 뻔 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지난해에는 동팡저우 자신이 나는 티셔츠 판매원이 아니다 라는, 다소 불편한 인터뷰를 할 정도였으니, 티셔츠 판매가 그의 운명을 EPL로 이끈 이유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데 있어서 그는 꽤 억울한 심경일 것이다.


다시 티셔츠로 돌아와서, 주제에서 많이 벗어났지만, 결국은- 티셔츠가 가지고 있는 의미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싶었다. 누구나 무엇이든 입을 자유가 있지만, 한번 선택해서 입고 나면 벗기가 여간 어렵지 않으며, 대부분은 평생 똑같은 팀의 티셔츠를 입고 살아가는 일이 대부분이 특별한 티셔츠 말이다.


티셔츠를 입었다는 사실 만으로 이방인 취급을 받기도 하겠지만, 나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그 특별한 티셔츠를 입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티셔츠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동조해준다면 기쁠 것이다.


티셔츠가 의미 있는 까닭은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은 내 팀의 선수들이 그 옷을 입고 뛰기 때문이 아닐까. 나와 같은 티셔츠를 입은 선수들이, 승리를 위해 땀과 인생을 바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또, 그들의 즐거움에 동참할 수 있다는 연대감의 출발선이며, 자신에게 부여하는 또 다른 사회적인 정체성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니, 봄이다. 티셔츠를 입자. 어느 팀의 것이든 좋다. 좀 어색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적어도 축구팬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라는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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